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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사하던 날
    우아한 디자이너 /영국 회사생활 2019. 12. 30. 04:17

    2019. 3. 1

     

     

     

     

    그냥 보통의 하루와 비슷하게 출근준비를 했지만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옷차림이나 화장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싶어졌다. 새로 산 흰색 셔츠를 개시하고 평소 쌩얼로 다니던 회사이지만 화장도 하고 귀걸이도 작은걸로 하나 꼈다. 3년 간 매일같이 걷던 출근길이고, 새로운 회사로 갈때도 한동안은 이 거리를 걸을텐데 왠지 기분이 달랐다. 괜히 사진도 몇장 찍어보며 회사까지 느릿느릿 걸었다.

    최대한 느리게 걸었지만 평소처럼 내가 가장 일찍 출근했다. 하지만 회사문을 여는 순간 평소와 다른 풍경에 울컥했다. 내 책상위에 친구들이 풍선과 배너로 장식을 해 둔 것이였다.... ㅠㅠ 분명 어제 저녁 퇴근 후에 했을것이 분명했기에 고마운 마음이 밀려왔다.

    '힝... 이거 모야 ㅠㅠ'

     

     

    출근해보니 풍선으로 장신되어 있는 내 책상 ㅠㅠ 감동...


     

    그제서야 오늘이 진짜 정든 이 곳을 떠나는 날이라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울지말아야지. 웃으며 다같이 사진도 찍고 그동안 쑥쓰러워서 못했던 말들도 나누면서 헤어져야지. 게다가 오늘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위해 치즈케익도 구워와 회사 키친에 두고 단체메일을 보냈다.

    Last Cake!

    얘들아, 알다시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서 너희가 그동안 가장 사랑해주었던 나의 치즈케익을 구워왔어. 회사 키친에 두었으니 편하게 먹어!

    한 시간 남짓 흐르자 하나둘씩 회사친구들이 출근하기 시작했고, 아침인사와 함께 마지막날을 아쉬워하며 스몰톡을 나눴다.

    "마지막 날이지? 기분이 어때?"

    "그냥.. 아직 실감이 안나.. 좀 슬프기도 하고 ㅠㅠ"

    "너도, 네 디자인도, 네 케익도, 니가 가져오던 한국과자도, 니가 맛있는거 가져왔다고 보내던 메일들도 모두 그리울거야.."

    회사메신저로도 많은 친구들이 그동안 고마웠다며 진심어린 축하와 칭찬을 해주었다. 그 중에 가장 나를 감동시켰던 메세지는.. 물론 조와 샤먼의 메세지 이기도 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케롤라인이 보낸 메세지였다. 우리팀 멤버인 케롤라인은 나의 프로젝트 매니져였는데, 나와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 중간에서 싫은소리도 많이하고, 클라이언트들의 불만도 늘 듣는 꽤 힘든 역할에다가.. 아들 둘을 둔 워킹맘이라 늘 몸과 마음이 바빴다.

     

    케롤라인은 보통 재택근무를 많이 했기 때문에 우리는 메신저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녀는 내 그림을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그림을 부탁하기도 했고, 언젠가는 내 그림책을 내고싶다는 나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며 여러 공모전 정보나 참고자료를 보내 주기도 했다 (게으른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못했지만....ㅎㅎ).

     

    오늘도 어김없이 캐롤라인은 3살 인 아들을 보느라 재택근무를 해서 내 마지막 날 함께하지 못했지만 내게 잊을수 없는 따뜻한 메세지를 보내주었다. 자기와 일하는 동안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프로젝트를 책임감 있게 잘 마무리해준 나의 태도에 진심으로 고마웠다며 꼭 다시 함께 일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처음 나를 만났을때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였던 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멋진 사람이 되었다고.. 언어때문에 절대 기죽을 필요없다며 여러 영국사람들과도 많이 일해봤지만 자기가 만났던 디자이너들 중에 나와 일하는 날들이 가장 즐거웠다고 했다.... ㅠㅠ 3년 간 문화차이를 극복해보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으헝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친절한 말을 잘 하는 영국인들이기에 예전엔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지.' 하며 마음에 담지 않았는데, 이젠 그 말이 설령 빈말일지라도 내게 용기를 준 따뜻한 말이기에 마음에 새기고 힘들때마다 내가 받은 마음들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한다.

     

    마지막 날인 만큼, 남은 팀 멤버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진행중이던 프로젝트를 일찌감치 마무리해 두고, 인수인계 자료로 만들어서 공유해두고 혹시나 내 도움이 필요한게 있는지 한번 더 멤버들에게 물어보고 책상정리도 했다.

    조: 니 책상에 어떤 골동품들이 있나 보자 ㅋㅋ

    다야: 음~~~ 이면지도 있고, 티백도 몇개 있고.. 칫솔도 있고.. 조, 너 갖고싶은거 있음 가져가.

    조: 글쎄... 뭐가 있낭 ㅋㅋㅋ 아, 나는 그럼 기념으로 네 칫솔 가져갈께 ㅋㅋㅋㅋㅋ

    다야: 뭐? ㅋㅋㅋ 내 칫솔? 진심?? ㅋㅋㅋ

    조: 이건 다야가 내게 마지막 선물로 준... 낡디낡은.. 구닥다리 칫솔이야... 라며 널 기억하려고 ㅋㅋ

    다야: ㅋㅋㅋㅋㅋ 헐 ㅋㅋㅋ 그냥 이 티백 가져가... 앗, 조! 나 이거 찾았는데 볼래? 너무 웃겨. 내가 우리회사 면접 준비할때 쓰던 공책이야.

     

    조: 뭐?재밌겠다. 뭐야이거. 예상질문들 적어놨네? "한국지사와는 자주 일을 합니까?" "한국어가 업무에 쓰일 기회가 있나요?" 이게 뭐여 ㅋㅋ 어떡해. 그 동안 한국어 쓸일 하나도 없었는데 ㅋㅋㅋ

    다야: 그러니까ㅋㅋ 긴장해서 질문도 못하고 나올까봐 이상한것 까지 엄청 적어놨네ㅋㅋ 벌써 3년 전이다. 아직도 인터뷰 보던 날 기억이 생생한데.

    나의 왼쪽에 앉아있던 조의 책상. 깔끔쟁이 조.... 

     

    나의 오른쪽에 앉아있던 샤먼의 책상. 깔끔한 조와는 반대로.... 거의 백화점 수준 ㅋㅋ 한 해 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샴페인이 아직도 책상에 있음 ㅋㅋ

     

     

    짐 싸다가 발견한 나의 옛 공책. 인터뷰 준비하느라 예상질문이며 디자인 용어를 영어로 빼곡히 적어두고 공부했었다. 꼬질꼬질하지만 추억이 많은 내 공책.. ㅠㅠ 

     

     

    그렇게 이것저것 정리를 하느라 정신없는 오후를 보내고있는데..

     

     

    조: 다야, 마지막으로 확인할게 있어서 그런데 5분만 회의 할수 있니?

    다야: 당연하지. 나 오늘 시간많아.

    조: 그럼 10분 뒤에 회의실에서 보자.

    10분 뒤.....

     

     

     

    회사친구들과 돈을 모아 샤먼이 주문해준 엄청 큰 케익!!!  동네방네 다 나눠주고도 두고두고 먹었다. 땡큐..쏘머취...xx

     

     

    ㄷ ㅏ야, 콩그레츄레이션!! 위 윌 미슈 쏘 머취~~~~~~~!!!

     

     

    흐엉 ㅠㅠ 회사친구들이 회의실에 다 모여서 깜짝파티를 준비했던 것이었다.... ㅠㅠ 능글맞은 조.... 회의하자더니..ㅠㅠ

    회의실 테이블엔 정말 어마무시하게 큰 케이크와 친구들의 카드와 선물들이 놓여있고, 다 같이 둥글게모여 박수를 쳐주며 이직을 축하해주었다.

    그제서야... 일주일동안 조가 시도했던 '다야 울리기'가 성공하는 순간이였다.

    다야: ㅇ ㅑ앙... 이거모야 ...ㅠㅠ 언제 이런걸 ㄷ ㅏ...흐흑 ㅠㅠㅠ

     

     

    조는 얼마전 호주지사로 발령난 헬렌이 보낸 축하인사도 읽어주고, 친구들이 롤링페이퍼 처럼 적은 큰 카드도 읽어주고, 그 동안 고마웠다며 인사도 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과 영국스러운 빨간버스가 그려진 나의 리빙카드..

     

    회사친구들이 적어준 카드. 읽다가 글씨체 때문에 아리송 한것도 많았다 ㅋㅋ 뭐라고 적은거여..

     

     

    조가 살짝 건내준 카드. 조 다운 카드다ㅎㅎ

     

     

    샤먼도 내게 따로 카드를 적어주었다. 읽다가 울컥 했는데, 나도 두 사람에게 따로 카드를 적어두길 참 잘했구나 싶었다..ㅠㅠ

     

     

     

     

    조: 다야, 스피치 해야지!

    친구들: 스피치! 스피치! 스피치!!

    다야: 이게 나의 첫 스피치이자 마지막 스피치이네... 흑흑 ㅠㅠㅠ 나의 퇴사를 축하해준 친구들, 그동안 나를 도와준 모든 친구들 너무 고맙고......... 흐헝 ㅠㅠㅠ

    샤먼: 오우 다야 ㅠㅠ 울지마..

    결국 스피치는 못했다.

    평소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엔 너무 쑥쓰러웠기에 이 자리를 빌어 하고싶었던 많은 말들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만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다.

    조: 일주일 동안 너 울릴려고 엄청 노력했는데 드디어 성공했네 ㅋㅋ역시 큰 케익이 필요했었던 거구나 ㅋㅋㅋㅋ

     

     

    역시나 조의 능글맞은 농담에 눈물은 웃음으로 바뀌고 다함께 케익을 나눠먹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매니저의 배려로 다 같이 조기퇴근을 하고 샤먼이 예약해 둔 퇴사파티 장소로 향했다.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먼저 퇴사한 친구들이 먼 길을 와서 함께해주었고 무엇보다 감사했던건 이미 퇴사한 나의 예전 매니저인 맷과 마틴이 와준 것이였다. 퇴사소식을 알리며 기대없이 예의상 연락을 했었는데 잊지않고 퇴근 후 나의 퇴사파티에 자리해주었다.

    옛 매니저였던 매튜와 마틴까지 함께 참석해주어서 너무나 감사했던 퇴사파티

     

     

    "다야, 축하한다. 큰일을 해냈네. 허허허."

     

     

    3년 전, 나의 면접관이였던 마틴이 면접보던 날을 회상하며 나를 놀리기도하고, 조금씩 성장해온 내 모습을 진심으로 칭찬해주었다.

    "그러게. 내 사무실에 들어올때마다 얼굴만 빨개져서 얼어있던 다야였는데. 대단해. 굿잡!!허허허허"

     

     

    맷이 나의 매니져였던 시절, 처음엔 1:1 면담을 해도 못 알아듣는 말이 절반이라 눈만 꿈뻑꿈뻑하다가 나오기도 했고,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맷 사무실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다가, 연봉협상이나 승진 욕심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큰맘먹고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이야기하던 시기가 있었다. 서로 의견충돌도 있고 조언도 많이 해주었던 맷이 퇴사를 하고, 지금 매니져인 마크가 왔지만 나의 회사생활의 90% 를 함께했던 맷이기에 그가 나의 퇴사파티에 와준 것은 내게 참 큰 의미였다. 고마운 마음도 참 크고,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지금 인연을 놓지않고 잘 이어나가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영국에 온 이후로 회식자리에선 절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던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친구들과 허물없이 마시며 웃고 떠들고 싶었다. 그래서....... 과음했다............ㅋㅋㅋㅋ 평소 회식은 늘 불참이던 조도 끝까지 자리를 함께하며 술이 꽤 취해서는 함께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제서야 나와 샤먼 그리고 조는 진짜 친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마치 한국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헤헤헤 하면서 집에 걸어올때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그때만큼은 언어의 장벽도, 그들의 진심을 의심하지도 않고 그저 허물없이 서로를 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순간이였다.

    '나도 이곳에서 진짜 친구가 생겼구나...' 싶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마음인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믿으며 오늘 느낀 따뜻한 마음들을 오래오래 간직해야겠다.  암 쏘 럭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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