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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탄] 05. 이력서만 200번우아한 디자이너 /우아한 디자이너의 탄생 2020. 1. 14. 16:00
쭈뼛거리며 시작했던 봉사활동도 어느 새 시작한지 몇 개월이 지났다. 일주일의 한 번의 방문이지만 나를 반겨주고 정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힘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시고 매 번 같은 질문을 하셔서 나를 당황시키지만, 한국에 계신 우리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한 번 더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봉사활동 만으로는 마음속의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았다. 이게 향수인 건지 낮아진 자존감에서 오는 허전함인건지 알 길이 없었다. 아니, 아마도.. 알면서 외면했던 것 같다.
> 곰: 여보, 요즘에도 가끔씩 헤드헌터한테 전화 와?
> 나: 아니. 요즘은 안 와.
지난 번 이불킥 할만큼 부끄러운 헤어제품 회사의 면접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회사를 찾지도 않았고 이력서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사실 지난 인터뷰 정도면 남편에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난 나름대로 노력했던거니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고는 구직활동을 그만 둘 생각이었다. 애초에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하지만 아마도 남편은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챘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당락에 관계없이 면접을 앞뒀을 때 잠시나마 열정 가득했던 나의 모습을 다시 찾아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곰: 다시 해보자.
> 나: 뭘..? 다시 지원해보라구? 아니 왜... 자꾸...
> 곰: 취업 안해도 돼. 근데 이렇게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잖아. 그냥 영어공부 하는 셈 치고 가볍게 지원해보자 다시. 너 요즘 다시 가끔씩 우울해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나: 아... 몰라....
그렇다. 가끔씩 남편은 내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들춰내서는 내 눈 앞에 턱- 하고 펼쳐서 보여주곤 한다. 숨기고 싶은 욕망, 우울감, 부끄러움, 게으름 등... 혼자만 알고싶은 나의 못난 모습들 말이다. 어떤 날은 그런 그가 참 야속하다. 그냥 모른척 해주면 안되는 건가... 싶다.
요즘엔 봉사활동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하고,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왜 나는 여전히 허전하고, 가끔씩 우울한 걸까? 뭘 원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애써 내 생활에 만족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닐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외면한 채... 오롯히 내 힘으로 독립적인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은 그 마음을...
야속하고 부끄럽지만 그의 말이 옳았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의 출근을 배웅한 뒤... 이 층 방으로 올라와... 닫아두었던 이력서를 다시 꺼내보았다. 아직은 남편에게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몰래 한 두곳의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렇게... 난 매일 아침 내가 갈 수 있을 만한 회사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 결국 200 통이 넘는 이력서를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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