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디탄] 06. 인터뷰에서 망신을 당하다우아한 디자이너 /우아한 디자이너의 탄생 2020. 1. 31. 02:35
지난 온사이트 인터뷰에서 보기좋게 미끄러진 후 다시는 구직활동을 하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정말 이대로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하지않으면 평생 못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당장의 두려움 보다 컸기에 조금씩이라도 용기내어 움직여 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일과 처럼 이력서를 접수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헤드헌터로 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되었고 근처 대도시에 있는 중소기업 주니어 디자인 롤을 위한 폰 인터뷰가 잡혔다. 약 이틀 간의 준비기간이 주어진 터라 영국친구들에겐 이쯤이야 껌 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지난 인터뷰의 기억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예상질문이라도 더 열심히 준비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유튜브와 구글을 뒤져가며 예상질문 리스트를 채워갔고 답도 성실하게 적고 큰소리로 따라 읽으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곰: 여보, 연습하는 건 좋은데 그 종이에 너무 의존하지마. 그건 어디까지나 그냥 예상질문인거야. 알지?
나: 응. 알아. 근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어서...이번엔 진짜 잘해보고 싶어..
그렇게 이틀 꼬박 연습을 했지만... 생각처럼 말이 술술 나오지 않았다. 영어로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드는게 여전히 힘들었던 나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말이 빨라지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따르르릉~~"
폰 인터뷰가 시작됐다.
제임스: 안녕. 다야? 난 오늘 폰 인터뷰를 맡게 된 제임스야. 지금 내가 밖이라서 좀 시끄러울 수 있는데 이해해줘. 혹시 잘 안들리면 말해주고. 십분 정도만 이야기 할거니까 괜찮을거야.
나: 응, 그럴게. 알려줘서 고마워.
지난 번 인터뷰 때 물었던 질문과 비슷한 질문들이었지만, 브랜딩 디자인 경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제임스: 우리 회사는 여러 제품들을 출시하는 클라이언트 들이 많아서 브랜딩 작업이 많은데, 혹시 경험이 있니?
나: 응, 그럼.. 브랜딩... 경험이 많고...원한다면 포폴을 보내줄 수.. 있고.. 브랜딩은...
사실, 제임스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몇 차례나 "다시 말해줄래?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니?" 등과 같은 부탁을 했던 터라... 또 다시 잘 안들린다, 이해가 안된다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충 알아들은 척을 하고 인터뷰를 하고있으니 자꾸 목소리는 작아지고 내가 적어놓은 스크립트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버벅거리고 싶지 않았고 프로답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로 정리 된 대답들을 하면 훨씬 좋은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읽는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읽으려고 노력하고있는데....
제임스: 다야, 너 혹시 지금 뭐 읽으면서 대답하고 있니? 대본같은거 보는거야?? (설마...)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다고 해야하나, 아니라고 해야하나... 어떻게 대답을 해야하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인터뷰가 망한건 물론이거니와 전화기 너머로 내 치부를 다 들켜버린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정적이 흘렀던 걸까...
제임스: 다야, 너 아직 거기있니? 말해줄래? 대본을 읽었던거야??
더이상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
나: 응... 제임스. 정말 미안해. 나 내가 작성해 놓은 스크립트를 읽었어......
제임스: 아니.. 어떻게 그런..... 치팅을......
나: 미안해.... 사실 나 너희 회사에 너무 가고싶은데.. 인터뷰가 너무 걱정이 됐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야... 잘하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내가 적어놓은 스크립트를 자꾸 읽게됐어....
제임스: 하...! 그래, 그런마음 들 수 있지.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했어! 그건 공정하지 못한거야.
다야: 응.. 알아. 미안해. 더이상 변명은 하지 않을게...
제임스: 그래, 그럼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할게. 며칠내로 결과를 받게 될거야. 그럼 이만.
뚜뚜뚜 -
화끈거리는 볼 위로 눈물이 흘렀다.
과한 열정과 욕심이 불러 온 결과였다.
사실 치팅이라고 생각 한 적은 없었다. 그냥 단지 내가 한국말로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반이라도 영어로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치팅이었고 들켜버렸다. 아니라고 잡아뗄수도 있었다. 전화기너머로 제임스가 확인할 길은 없었다. 하지만 내 자신을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정말 치팅이 되어버리는거 같아서..
원어민이 듣기에 외국인이 아무리 연기를 한 들 모를리가 없는데.. 치팅이라고 생각도 못했던 나는 그냥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야지. 이 생각 뿐이였던거다. 당연히 인터뷰에서는 떨어졌고, 그 날의 일은 여전히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제임스의 반응은 내게 작은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걸음마를 하면서 수 없이 넘어지는 아기들 처럼 그냥 오늘하루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진거라고 생각하자... 부끄럽지만 다시 일어나면 된다..
그 날의 경험은 내게.. 다시는 그런일을 반복하지 않으리,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진실되게 나를 보여주고 도전하리라는 다짐을 내 마음 깊은 곳에 남겼다. 나는 외국인이다. 내게 영어는 외국어이다. 부족할 지언정 부끄러워하지말자. 솔직하고 당당하게 현실을 마주하자..
'우아한 디자이너 > 우아한 디자이너의 탄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디탄] 08. 희망이 주는 달콤함 (0) 2020.04.07 [우디탄] 07. S 회사와의 인터뷰, 해볼 만 하지 않아? (0) 2020.04.06 [우디탄] 05. 이력서만 200번 (0) 2020.01.14 [우디탄] 04. 영국사람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기 (0) 2019.03.01 [우디탄] 03. 영국에서의 나의 첫 면접 (0) 2019.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