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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디탄] 08. 희망이 주는 달콤함
    우아한 디자이너 /우아한 디자이너의 탄생 2020. 4. 7. 23:54

     

    헨리온템즈에서 본 템즈강의 모습 (이미지 출처 /www.ourworldforyou.com)

     

     

     

     

    곰: 여보, 잘 다녀와! 긴장하지 말고, 홧팅!

     

    따뜻한 햇살이 긴장한 마음도 녹일듯한 아침에, 남편의 응원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내 과제를 마음에 들어했다니, 분명 과제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겠지? 뭐라고 답하면 좋을까..?

     

    평화로운 아침을 느낄 여유도 없이 기차역에 와서는 미리 도착해 있던 기차에 올라탔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쪽에 대충 자리를 잡고, 평소였다면 창밖을 보며 느긋이 앉아 있었겠지만, 지금 머릿속은 온통 오늘 있을 인터뷰 생각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회사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다만 온사이트 인터뷰가 있기 며칠 전, 남편의 권유에 그제야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팀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다. 

     

    곰: 우와~ 여기 홈페이지 되게 귀엽다 ㅋㅋ 회사 이름도 귀엽고. 왠지 사람들도 재밌을 거 같아. 분위기 되게 좋을 거 같은데? 

     

    다야: 어라, 그렇네 ㅎㅎ 귀엽다. 누가 디자인한 걸까? 디자이너는 많을까?? 

     

    곰: 글쎄, 인터뷰 가서 물어보면 되겠다~ㅎㅎ

     

    회사 홈페이지를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전에 없던 기대감과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러자 잔잔하던 가슴이 갑자기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인터뷰가 마지막 관문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 그럼 이 디자인은 이렇게 설명하고... 저건.. 이렇게...

     

    낡은 기차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준비해 온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인터뷰 준비를 20분 남짓 했더니, 드디어 S회사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Henley-on-Thames라는 작은 도시로, 아기자기하고 예쁜 도시경관을 보러 영국인들도 나들이하러 많이 오는, 휴양도시 느낌이 나는 아름다운 곳이다. 나도 남편과 주말에 몇 번 온 적은 있지만, 인터뷰를 보러 오게 될 줄은 몰랐다. 

     

     

     

     

    헨리온템즈 하이스트릿의 모습 (이미지 출처 /www.ourworldforyou.com)

     

     

     

     

    여기도 구석구석 회사들이 꽤 많구나. 이런 곳에서 일하면, 출퇴근 시간이 신날 텐데. 

     

    골목 사이로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보고 창문 너머 상가들 구경도 하며 걸으니, 금세 S회사 입구에 도착했다. 

     

    어라...? 여긴가..?

     

    전형적인 사무실 건물을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3층짜리 플랏처럼 보이는 건물에 회사 간판이 붙어있는 게 아닌가? 

     

    여기... 제대로 된 회사 맞는 거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행히 리셉션 직원이 입구에서 어슬렁 거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오피스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실내는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듯, 나무 계단도 있고 익숙한듯 특별한 느낌이 있는, 오히려 그 덕에 편안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남동생 방에나 있을 법한 친근한 옷걸이에 걸린 수많은 옷들 뒤로, 언뜻 보이는 직원들의 모습은 활기차 보였다. 

     

    그렘: 다야님, 반가워요. 오늘 인터뷰를 함께 할 그렘입니다. 디렉터를 맡고 있지요. 윗 층으로 가서 이야기 나눌까요? 

     

    다야: 안녕하세요. 다야입니다. 네, 좋습니다. 인터뷰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삐걱거리는 낡은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깔끔하게 꾸며놓은 회의실이 나타났다.

     

    그렘: 여기로 들어가시지요. 이곳에서 인터뷰가 진행될 거예요. 곧 저의 동료 한 명이 더 올 테니 먼저 앉아계시면 됩니다. 

     

    다야: 네, 감사합니다. 혹시 물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

     

    그렘: 아, 물론이죠. 미안해요 내가 먼저 권했어야 했는데 늦었네요. 여기, 물..

     

    다야: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렘: 아, 도착했네요. 여기는 테크팀의 크리스예요. 여기는 오늘 인터뷰를 보게 될 다야님이고요. 

     

    크리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나를 안내해 준 그렘은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짧고 어두운 머리색을 가진 푸근하고 친근한 중년 영국인 아저씨였다. 오는 길이 힘들지 않았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묻기에 답했더니 내가 살고있는 동네를 잘 안다며 작은 지름길까지도 술술 말하는 이 지방의 토박이였다. 그에 비해 크리스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고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날씬한 체형에 반짝이는 눈빛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왠지 어설프게 아는 척을 했다간 크리스에게 다 들킬 것 같은 눈빛이랄까...? '허허허.. 긴장했나 보네.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할 것 같은 그렘과는 대조적인 느낌이었다. 

     

     

    그렘: 자, 테크팀과 인터뷰를 보는 이유는... 다야님은 이전에 IT회사 근무 경력이 있으니 잘 알겠네요.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죠. 허허.. 한 팀이라 생각하고 일을 해야 해서 크리스를 초청했습니다. 만약 우리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면, 크리스와 함께 일 하게 될 거예요. 

     

    크리스: 프로그래머만 있으면 섭섭할까 봐 디자이너 한 분도 초청했으니 곧 올라오실 거예요. 우리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있죠. 

     

    다야: 좋습니다. 

     

     

     

    디자이너 채용 인터뷰 내용은 비슷비슷했다. 

     

    • 지금까지 경험한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왜 그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지?
    • 가장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이유는?
    • 가장 힘들었던 프로젝트는? 이유는?
    • 팀 원들과 갈등이 생길 땐 어떻게 하나? 
    • 포폴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나? 
    •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가?
    • 우리 회사에 대해서, 또는 너의 역할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는지? 

     

    등이 주를 이루었다. 

     

    그렘: 우리 회사는 젊고 활기찬 회사예요. 즉, 하루하루 업무가 굉장히 빨리 진행되고 변수도 많다는 의미예요. 매일매일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될 수도 있고, 동시에 두세 개의 프로젝트를 하게 될 수도 있어요. 괜찮나요? 

     

    다야: 네, 물론입니다. 이미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안 그런 환경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과 협력하는 프로젝트 외에도 국가가 운영하는 프로젝트도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주로 두 부서와 함께 일을 했고 두 부서의 프로젝트 성격은 조금 달랐지만 다양한 디자인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디자이너인 리디아가 들어왔다. 수수하지만 개성이 묻어나는 옷차림에 금발머리를 한 리디아는 왠지 내 또래 일 것 같아서 친근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자신만의 예술세계가 강한 친구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름지기 디자이너라면 이 정도 예술가 포스는 풍겨줘야지~ 하는 느낌이랄까. 면접복장으로 갖춰 입은 내가 그녀에 비해 너무 평범해 보이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지만, 이내 곧 마음을 다스리고 리디아에게 디자이너 업무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다야: 그렘이 업무가 굉장히 빨리 진행된다고 하는데, 디자이너의 하루 업무 루틴은 어떻게 되나요? 

     

    리디아: 음.. 출근해서 우선 짧게 미팅을 해요. 어제 업무에 대한 리뷰도 하고 오늘 할 일에 대해서 다시 체크를 하기도 하죠. 그러곤 각자 업무를 시작하는데 업무 중간중간 특별히 회의시간을 정하지 않고 필요한 경우 잠깐씩 회의를 하면서 자유롭게 일해요. 

     

    다야: 지금 몇 개의 프로젝트를 맡고 있나요? 그 프로젝트들의 진행 기간을 얼마나 되었나요? 보통 한 프로젝트 당 몇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일을 하나요? 물론 프로젝트마다 다르겠지만..

     

    리디아: 저는 현재는 세 개의 프로젝트를 맡고 있지만, 각 프로젝트마다 진행속도는 다 달라요. 어떤 건 며칠 만에 끝이 나기도 하고, 어떤 프로젝트들을 몇 달씩 걸리기도 하죠.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는 약 2주 동안 진행 중인데 한 두 개는 곧 끝이 날 거 같아요. 별 문제만 없다면. 네, 얼마나 큰 프로젝트냐에 따라서 함께 일 하게 될 디자이너 수는 다르겠지만 지금 맡고 있는 세 개의 프로젝트 중 두 개는 나와 엠마라는 친구와 함께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그 친구는 웹 디자이너예요. 

     

    다야: 답변 고마워요. 흥미롭네요. 혹시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는데, 제가 가진 기술이 부족한 경우에는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교육 같은 게 있을까요? 아니면 독학을 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다던가.. 

     

    리디아: 솔직히 말하면 바쁠 땐 불가능해요. 그냥 일하면서 배우거나 그 기술을 가진 다른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죠. 그만큼 업무가 바빠요. 하지만 여유가 있다면 언제든지 그런 기회를 갖는 건 가능해요. 

     

    다야: 이 회사만의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업무 관련 내용도 좋고 그 외의 장점도 좋아요. 

     

    크리스: 베이킹 컴피티션!!! 하하 핫

     

    다야: 베이킹이요?  (어라, 베이킹은 내 취미인데...?)

     

    그렘: 하하하 ㅋㅋ 크리스, 그게 젤 큰 장점이라니 실망인데? ㅋㅋ 다야, 우리 회사에서는 팀 빌딩 이벤트의 하나로, 매년 베이킹 대회를 열어요. 각자 주제에 맞는 케이크를 구워오거나 또는 자유주제로 케익 데코레이션을 해서 우승자를 뽑는 거예요. 팀 별로 해도 좋고요. 작년 우승팀에게 우리 회사 단체 후드티를 상품으로 줬어요. 

     

    크리스: 이거예요.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거! 그 말은 즉... 우리 팀이 우승했다는 거죠 ㅋㅋ

     

    리디아: 아.... 다야가 케이크 위에 올려진 그 초록색 개구리 장식을 봤어야 하는데! ㅋㅋㅋ 

     

     

    내 질문 틈틈이 그렘은 회사 사업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 사실 기술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깊은 질문은 할 수가 없었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하고 큰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독자적인 서칭 기술은 꽤나 인정을 받고 있는, 작지만 탄탄한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인터뷰가 끝이 나고, 그렘은 아래층에서 잠깐 보았던 오피스를 구경시켜 주었다. 크리스가 자랑하던  후드티와 똑같은 옷을 입고 일하는 직원들도 몇 명 보였고 서서 일하는 사람들, 미팅을 하느라 바쁜 사람들을 보니 흡사 드라마에서 보던 방송국이나 증권사의 바쁜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엄청 바빠 보이네, 여기서 내가 영어 못 알아듣고 버벅거리고 일이 늦어지면 어쩌지..? 나 할 수 있을까....? 어우 나 뭐야, 벌써 김칫국이야.. 웃겨 진짜 ;;

     

    이런 두려움과 동시에, 활기 넘치는 현장을 보니 나도 이 곳에서 이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다들 바쁘지만 즐거워 보였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내 또래처럼 보여서... 어쩐지 나도 쉽게 이 사람들 속에 스며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야: 오늘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즐거운 인터뷰였어요. 

     

    그렘: 나도 즐거웠습니다. 먼 길 와주어서 고마워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30분이면 끝이 날 것이라는 헤드헌터의 말과는 달리 한 시간이 좀 넘게 진행되었던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많이 웃었고 편안한 분위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인터뷰는 인터뷰였는지 그제야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몸이 스스륵 풀어지는 것이다. 배도 고프고 시원섭섭한... 이 마음을 달래려면 역시 달달한 게 최고지! 나를 위한 보상이라며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내가 젤 좋아하는 영국 음식인 ㅎㅎ 크림 티를 주문했다. 

     

     

     

     

    크림티는 스콘에 딸기쨈과 클로티드 크림을 발라서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티와 함께 먹는 영국의 전통 식사 겸 디저트의 한 종류이다. (이미지 출처 dartvalleycottages.co.uk)

     

     

     

     

     

    여보, 인터뷰 어땠어? 고생 많이 했어

     

    다야: 고마워 여보! 인터뷰.. 재밌었어ㅎ 다들 친절하고. 인터뷰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헤드헌터는 30분이랬는데 한 시간도 넘게 걸렸어.

     

    곰: 오, 좋은 징조 같은데? 

     

    남편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림 티도 먹고 있고, 홀가분하게 인터뷰도 끝냈는데, 이상하게 신나지만은 않았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멍하니 카페 창밖으로 햇살만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인터뷰 가기 전 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마음이 크진 않았는데.. 인터뷰하고 나오니, 그 회사에 너무너무 입사하고 싶어져... 근데 만약 간다고 해도 잘할 수 있을까... 난.. 손도 빠르고 일할 때 눈치도 빠른 편이라 한국이었다면 전혀 걱정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 여기선 내가 아무리 빠릿빠릿해도 회의할 때 영어 몇 마디 못 알아들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잖아....  이번이 마지막 인터뷰라고 했는데... 
    내게 기회가 주어질까..?

     

     

    인터뷰를 보고 나올 때, 왠지 다 잘 될 것 만 같은 희망적인 느낌이 들었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봤다. 이곳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 집도 멀지 않고, 분위기도 좋고, 도시도 예쁘고 일도 재밌을 것 같은.... 모든 것들이 다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 한 가지..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부족한 자신감만 제외하면. 

     

     

     

    에이, 뭐 어때, 그래도 그 회사에 가고 싶다. 누구나 처음엔 다 그런 거야. 괜찮아 다야.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보자. 
    곧 연락 올 거야... 지금은 크림티나 먹자! 

     

     

    희망이 주는 달콤함은, 스콘에 가득 발려진 딸기잼 보다 강했던 걸까. 뒤돌아서 카페를 나오니 크림티의 맛이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았다.

     

     

     

    헨리온템즈에서 본 템즈강의 저녁풍경 (이미지 출처 thespaces.com)

     

     

     

     

     

    [우디탄] 07. S 회사와의 인터뷰, 해볼 만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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