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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디탄] 10. 그래, 여기가 내 자리야
    우아한 디자이너 /우아한 디자이너의 탄생 2020. 4. 17. 01:40

     

     

    집에 도착해서 주체할 수 없는 허탈함과 실망감에 눈물을 쏟아냈다. 

     

    거의 다 되었는데, 순간의 실수로 미끄러진 것 같은 아쉬움에 미련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난 인터뷰 때 만났던 내 또래 디자이너인 리디아가 부러웠고 크리스가 부러웠다. 잠시나마 나도 그들과 함께 베이킹 대회를 하며 웃고 떠드는 상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하.... 나도 참.....

     

    실망했을 내가 걱정이 되었던 남편은 일찌감치 퇴근을 해서 거실 한 켠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곰: 에이~~ 여보 왜그래~~ 괜찮아. 괜찮아. 최종단계까지 간 게 어디야~~~ 예전에 폰 인터뷰에서 매번 떨어졌던 거 생각해봐~~ 엄청 발전했지?

     

    다야: 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한 시간도 고민을 안하고 탈락시킬 수가 있어???? 그럼 왜 한 달 동안 이렇게 고생시킨 건데????!!  하... 

     

    곰: 그런 거 아닐 거야~~ 늦게 연락 주면  그동안 마음 졸일 텐데.. 그거 배려해준 걸 거야. 일주일이나 속앓이 하다가 탈락 했다고 알려줬어 봐. 더 짜증 날걸?? 

     

    다야: 아 몰라.. 그냥 탈락은 다 싫어. 언제 알려주든 다 똑같아 .ㅠㅠ
    곰: 그러지 말고... 이거 들어봐.. ^-^
    다야: 이게 뭔데...ㅜㅜ

     

     

    속상함에 울먹거리는 내게 갑자기 남편이 헤드폰을 씌워주었다.

     

    다야: 뭐야.. 영화 찍어..? 장난치지 마... ㅜㅜ 
    곰: 들어봐.. ^-^ 

     

     

     

     

     

     

    다야: 으 ㅇ ㅏ앙... ㅜㅜㅜㅜㅜㅜㅜ 

     

     

    낯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는 남편이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는 걸.. 첫 소절을 듣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주말도 반납하며 노력했다는 걸 남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리 멘탈인 내가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마음 졸였을지도. 그런 나의 옆에서 묵묵히 집안일도 도맡아 하고 여러 가지로 도와주었던 남편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줄 생각에 한껏 들떴을 내 모습도...

     

     

    다야: 여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ㅠㅠ
    곰: 미안하긴. 그런 말 하지 마.. 취업 안 해도 돼.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해.. 알았지? 대신 오늘 일은 잊어버리고 주말에 재밌게 놀자. 고생했어 ^-^

     

     

    남편의 위로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동시에 내가 취업을 못하더라도 나를, 우리 가정을 지켜 줄 든든한 울타리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다. 물론 그 짐을 혼자만 지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함께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이 곳에서 나는... 너무도 능력이 없다..

     


     

    인터뷰를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5평 남짓한 작은 인쇄소에서 직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은 것을 봤었다. 창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니 대충 보아 간단한 가게 홍보 전단지나 명함들을 주로 만드는 곳 같았다. 

     

    내가 너무 욕심부리고 있는 걸까? 이런 인쇄소는 날 받아줄까? 부모님에게 번듯한 회사에 취업 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내 실력에 안 맞게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여기서도 충분히 재밌게 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사무실의 풍경은 고요했다. 인상 좋은 중년 아저씨와 4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직원이 전부였다. 낡은 사무실 이지만 정돈되어 밝은 느낌이 들었다. 문득 저기에 앉아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 상상을 했다. 친절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 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서툰 영어를 많이 도와주며 챙겨줄지도 모르겠다. 일도 훨씬 쉽고 자신있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상에도 가슴이 뜨거워지지는 않았다. 자만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기에서 일하는 건 도전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뭘 믿고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고객 전화 한 통에도 긴장할 거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분명 어느 회사를 가던지 내게는 도전일 것이고, 어디에나 배울 것은 있을 텐데. 

     


     

    남편이 들려주는 음악을 듣다 보니 다시금 길에서 보았던 그 인쇄소가 떠올랐다. 좀 더 현실적인 도전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거기가 내 자리 일 지도 모르잖아.. 이제 불합격 통보 보다도 어디서든 합격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힘들면 언제든 그만 두어도 좋다는 남편의 말을 방패 삼아 언제 끝날지도, 언제 만족할지도 모를 이 도전을 그만두고 싶어 졌다..

     

     

     

    다야: 여보, 맥주나 마시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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