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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취업, 그 뜻밖의 여정 (3)
    곰같은 개발자/영국에서.. 2019. 2. 28. 06:31




    짐을 짊어지고 부지런히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버스 정류장 뿐 만 아니라 주위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흑인이었다. 영국에 흑인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모두”가 흑인인 동네가 있을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런던의 남동쪽 지역에 위치한 동네였는데 대략 올드 켄트(Old Kent), 패캠(Peckham), 루이샴(Lewisham) 과 인접한 동네였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당황도 사치였다. 머릿속에는 오직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 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낯선 동네의 낯선 길을 따라 한 10분 정도 걸어가니 그 학생이 보내주었던 사진에서 보았던 집이 나왔고, 문을 두드리니 방을 빌려주기로 한 학생이 문을 열어 줬다. 환전해온 파운드를 대략 40일간의 방세를 미리 지불 한 후 열쇠를 받고 짐을 풀었다. 그제서야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한국을 떠나서 영국 히드로 공항으로, 그리고 생전 처음 들어본 지역에 있는 낮선 작은 방에 도착하기까지 한 순간도 놓지 않았던 긴장이 풀리며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뭔가를 본격적으로 하기에는 나는 너무도 피곤했다. 그 무엇보다도 휴식이 절실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여행을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잠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내가 무슨 짓을 한건가.. @_@


    친구들은 사회에서 자리잡고 결혼 준비도 하고 재태크도 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나는 갑자기 모든것을 뒤로하고 뜬금없이 영국이라는 나라에 와 있다니. 그것도 취직 해서 온 것도 아니고, 맨땅에서 부족한 영어로 취직하겠다는 무식한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렇게 이런 저런 잡념으로 현실과의 괴리감에 휩싸여 갈 무렵, 문득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촉감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창밖의 화창한 날씨가 보였다. 곧 이어 창밖에서 불어오는 기분좋은 바람을 느끼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시차 때문인지 한 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창은 활짝 열려 있었고 창 밖에는 달이 떠 있었다. 공기가 맑기 때문인지 달이 정말 선명하고 밝게 보였다. 방충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기의 기척은 전혀 느껴 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국에는 모기가 거의 없다. 여름에 창문을 활짝 열고 자도 모기에 시달리지 않는다니, 평생 상상해보지 못하던 일이었다. 조금 뒤척이다 이내 다시 잠들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빵을 끼니를 때우고 나서 장도 볼겸 산책도 할겸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실질적으로 처음 “영국 생활”을 시작한 날이어서인지,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영국의 여름 날씨는 천국 같았다.



    6월 말부터 9월 초순 까지 이어지는 선명한 햇살과 파란 하늘 기분좋게 부는 선선한 바람과 맑은 공기, 덥지 않은 날씨, 좋은 여름냄새. 조금 건조한 공기 덕분에 빨래는 늘 뽀송뽀송하게 마르고 좋은 냄새가 난다. 특히 해질녁 부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9년 간의 영국 생활을 통해 겪어 봤지만 단점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영국의 여름이기에, 영국인들 스스로도 “Beautiful British Summer” 라고 부르며 자랑거리로 삶는다. 만일 내가 영국을 떠나게 된다면, 가장 그리워 하게 될 것중 하나가 영국의 여름 날씨가 아닐까 싶다.


    무모하지만 용감했던 나의 해외 취업 도전길은 이렇게 아름다운 영국의 여름 날씨와 함께 시작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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