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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탄] 00.프롤로그: 우아한 디자이너의 탄생우아한 디자이너 /우아한 디자이너의 탄생 2019. 2. 18. 20:11
한국의 저 어디쯤 위치한 지방의 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곳에선 최고라는 국립대를 졸업하고 재미로 본면접에서 합격하여 어렵지 않게 중소기업의 그래픽디자이너로 취업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고 익숙한 풍경과 소꿉친구들과의 수다가 가장 큰 행복이며 가장 멀리 가본 곳은 제주도였던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국립대를 졸업한 엘리트요, 부모님에게는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하지만 그저 지금처럼 곱게 자라 부모님이 손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서 잔잔히 살 것 같았던 내 인생이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영국이민’이라는 폭풍 같은 변화를 맞이했다.
결혼 전, 지금의 남편은 내게 밤낮으로 영국에 오기 전에 혼수도 예단도 아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당부했었다. 하지만 떠나게 될 고향에 대한 미련이 더 컸던 나는, '막상 가서 살면 다 하게 되겠지.’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문법책 한 번 보지 않고 그저 예쁜 옷들만 잔뜩 챙겨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2014년 9월. 영국이라는 멀고도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내 딛는 순간, 내가 마주한 세상은 영화 속의 영국과 180도 다른 모습이었으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겹도록 배웠던 “Hello, how are you?” 한마디조차 못하고 얼어버린 내 모습만 남았었다. 자칭 시골 엘리트 생쥐의 첫 좌절이었던 셈이다.
백인들만 가득했던 영국의 지방에 살면서 신혼의 달콤함도 잠시. 낮에는 누군가 내게 말이라도 걸까 봐 무서워서 남편 뒤에 숨어버리고, 밤이면 무너져버린 자존감 때문에 눈물 흘리던 수많은 날들. 영국의 이국적인 풍경보다도 한국에서의 자신감 넘치던 내 모습이 그리워질 때쯤, 남편이 마련해준 안락한 울타리를 벗어나 처음 세상 밖으로 작지만 큰 한 걸음을 내딛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도전과 좌절 끝에 누구보다 겁 많고 평범했던 내가, 영국에서 학위 하나 없이 런던의 대기업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은, 영화 속 이야기 같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이 공간에 적어보려고 한다. 지난 5년간 고생했을 나를 위한 보상이, 예전의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작은 위로가,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누군가에게는 열정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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