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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디자이너

01. 말 못하는 이방인





남편을 만나기 전, 나는 해외여행 경험도 이민에 대한 로망도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의 직장이 있던 영국의 지방 도시에 살게 되었는데 그 곳은 대충 둘러보아도 백인들만 가득했다. 길을 걸어갈때면 아이들의 숨길 수 없는 눈빛은 나를 신기한듯 쳐다보았고 영어는 내게 소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인건, 나는 그들의 눈빛이 불쾌하지 않았고 동네는 너무나 아름다웠으며 남편은 행여나 내가 불편할까 늘 배려해주었다. 

영국의 첫 인상은, 아름답지만 불편한 것 투성이고 신혼생활은 재밌지만 이곳에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은, 그런 곳이었다. 



"아아악!! 외출하려고 옷도 차려입고 머리 손질도 다 했는데 이게 뭐야. 갑자기 비바람이 불잖아. 날씨 왜 이래!!!"

"뭐가 이렇게 비싸? 한국에선 몇 천 원이면 되는데."

"느려도 너무 느리다. 병원 한번 가려고 2주나 기다려야 돼?"

"나 말 못 하겠어..... 여보가 해줘."

"음식이 너무 맛없어..." 로 시작했던 영국에 대한 불만은 시간이 지날 수록 '나'에 대한 것으로 변했다. 



"몸만 성인이지 다시 어린애가 된거 같아..."

"말도 못하는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사는 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내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었나..."


언어가 주는 제약은 나를 하루아침에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고, 평소 자신있어 하던 일 마저도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 여보, 집에만 있지 말고 어학원이라도 다니는 게 어때? 집 근처에 있는걸로 등록 해줄게. 

"싫어.. 말도 못 하는데 가서 바보같이 앉아있어야 하잖아...내가 제일 못 할 것 같은데..." 

- 아니야. 거긴 다들 공부하러 오는 곳이니까 실력도 비슷해. 초급반으로 들어가면 친구도 금방 사귈 거야. 



시간이나 떼울 겸 시작한 일주일에 두 번의 어학원 수업은 잠시나마 일상의 무료함을 잊게해주었다. 그곳에서 한두명의 친구도 사귀었지만 그들과의 대화가 부담스러워 수업시간 외에는 만나는 것을 꺼렸다. 그러니 괜히 더 외롭기도 했다. 



- 여보, 오늘은 내 부탁 좀 들어줘. 우체국에가서 편지 한통만 보내주라.

"뭐? 여보 나 못하는거 알잖아... 꼭 내가 해야해?" 

- 내가 적어줄테니까 이대로만 말하면 돼. 정말 힘들면 그냥 이 종이 보여주면 알아서 해줄거야. 걱정마.


- 여보, 마트에가서 이것 좀 사와주라. 

- 여보, 은행가서 통장하나만 만들어 줄래?  등등.. 




남편은 매일매일 작은 심부름을 내게 부탁했고, 나는 피하고 싶었지만 이렇게라도 남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기에 마치 임무완수를 하듯 억지로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실수는 많았다. 아니,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실수의 연속이었다. 

몇 천원이면 되는 일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예스, 예스..." 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몇 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 하기도 했고, 전화로 문의를 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눈물이 터져서 상담원을 당황시키기도 했으며, 못 알아들으니 대화 중에 "쏘리" 라며 그냥 나와버리기도 수십번... 통장을 만드는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탓하지 않았고 이웃들도 모두 친절했다. 하지만 스스로 '말 못하는 이방인' 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는 자책하고 속상해하며 매일밤 눈물을 흘렸다. 

친구들 역시 영국에 사는 나를 다들 부러워했지만 행복과 함께 불안함, 낮아진 자존감이 주는 우울함도 함께 찾아왔다. 







'이런 내가, 이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나 하나 책임지지도 못하는데 좋은 아내, 좋은 엄마는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