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스카이 이직 후 한달 동안의 이야기
    우아한 디자이너 /영국 회사생활 2019. 12. 30. 04:35

    2019. 4. 8

     

     

     

    이직을 하고 출근을 한지 어느덧 4주 가 지났다.

    출근한 지 3일째 되던 날, 다른 친구들은 다 바빠 보이는데 왜 내게만 '제대로 된 일'을 주지 않는 거냐고 집에 와서 오빠에게 투덜거렸는데 말 꺼내기가 무섭게 다음날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다야, 조급해 하지마. 지금은 매니저와 팀원들과 신뢰를 쌓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할 때야.'

    라는 오빠의 조언이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전 직장에서 시니어 디자이너로 주요 업무들을 맡아가며 주목받다가 큰 회사에서 적응시간이라며 주어진 작은 일들이 괜히 시시하게 보이기도 했고 이리저리 바빠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이대로 비주류가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나도 빨리 뭔가 보여주고 싶다...'라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음 날, 매니저인 데이모가 준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내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도 흥미롭고 큰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내가 적임자라는 말에 으쓱하다가도 부담감이 밀려오기도 했는데... 바로... <스카이 캐슬>을 만드는 일이다 ㅎㅎ 스카이엔 매일 다양한 부서와 지점에 새로운 사원들이 입사를 하고 많은 거래처와 고객들이 찾아온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박물관 개념의 공간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인데, 스카이의 역사와 이념, 그동안의 상품, 다양한 정보와 활동들을 전시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처음 스카이에 입사에서 나처럼 어리버리 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다니! 그래서 내가 적임자라고 했던 거구나!!

    학생 때부터 무대 디자인, 공간 디자인, 설치미술 등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번 프로젝트가 너무 신나고 기대가 된다.

     

    영국에 있는 여러 스카이 오피스에 내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부스가 설치 될 예정이라니!  >ㅁ<  위의 사진은 또 다른 부스의 모습이다. 

     

     

    사실 처음에 내가 맡게 될 업무는 디자인 업무에만 국한되어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입사했는데, 막상 입사를 하고 한 달 가까이 일을 하다 보니 디자인을 한 날 보다 기획을 하는 날이 더 많았다.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서를 작성하고 회의에서 내 기획서를 발표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루에도 회의가 2~3개씩 잡혀있고 방금 회의가 끝났는데 불과 몇 시간 뒤에 있을 다음 회의에서는 발전된 결과를 보여주어야 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잘 해내고 있어 보였다. 나는 지금 회의에서 나오는 말들조차 이해가 안 되는데 뭘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고 다음 회의엔 어떻게 발표를 한단 말인가? 겁이 났다. 질문하고 싶은 게 한 가득인데 나만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걸 들킬까 봐 겁이 나서 주눅이 들었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모르면서 아는척하는 게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영국에 사는 동안 그 마음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며 지내왔는데 또 어김없이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체면치레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났다. 괜한 자존심이 세고 남들에게 부족한 모습 보이는걸 너무나 싫어하는 성격이 나의 발전을 막고 있다는 걸 느낀 이 후로 그러지 말자며 되새기지만 언제나 어렵고 부끄럽다.

     

    근데.. 정말.. 이런 상황에서는 체면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장 내가 해내야 할 일들이 코앞에 닥쳤는데 도도한 척, 다 아는 척 앉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게 더 무능한 거라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게다가 지금은 갓 입사한 병아리가 아닌가? 이때야말로 바보 같은 질문을 해도 뭐든지 이해되는 두 번 다시는 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끄러웠지만 그걸 방패막이 삼아... 같은 회의에 들어갔던 팀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묻기 시작했고, 회의에 들어갈 때 녹음기를 켜기 시작했다.

     

    샘, 바쁜데 미안. 내가 아까 회의 시간에 들었는데 잘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혹시 다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이해한 게 맞니? 그 용어는 무슨 뜻이야? 그럼 정확히 우린 뭘 해야 하는 거야? 어떤 과정으로 업무가 진행되는 거야? 그럼 다음 회의엔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 거야? 이 부분에 대해선 누구한테 조언을 얻으면 가장 좋을까?

     

    등등.. 친구들에게 묻기 시작했는데 고맙게도 친구들은 친절히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 주기도 하고 직접 보여주기도 하면서 나를 도와주었다.

     

    얘들아 고마워.. 

    괜찮아. 우린 한 팀 이잖아 ;-) 

     

     

    그렇게 시간이 지 날 수록 조금씩 업무에 대한 이해도 생기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이전 회사와 다른 업무체계에도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예전 회사에서는 완벽히 분업화되어 업무를 했기에 한 팀이라고 해도 회의를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나는 주어진 자료만 보고 디자인만 열심히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각기 다른 분야의 팀원들이 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나가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회의를 하고 진행상황을 공유해야 한다.

     

    처음엔 아무리 전화이고 화상회의이지만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 자체가 너무 긴장되어서 준비해 간 말도 다 못 하고 어버버 거리는데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불안했는지 다른 팀원이 내가 해야 할 설명을 대신해주기도 했었다. 그 상황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속상하고 부끄러워서... 소심쟁이인 나는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느리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건 분명 영어가 아닐 게야...' 싶던 스코틀랜드의 사투리에도, 마이크로 허공에 대고 전화기 너머로 발표를 하는 것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분명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있고 체력적으로도 힘든 날도 많지만 이 상황을 잘 견뎌내고 난 이후의 내 모습이 기대되기도 하고, 내가 앞으로 해나 갈 프로젝트들이 빨리 보고 싶기도 하다.

     

    열심히 하되 지치지 않게 재밌게 일 해야겠다  ;-)

     

     

     

     


    댓글

Designed by Tistory.